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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 소개는 스스로 하면 되겠죠? 먼저 음.. 저는 이번 굿-즈에서 제가 기존에 그리던 드로잉 작업을 판매하고요, 거기서 파생된 뱃지 형태의 파생물이 있어요. 순서로 보자면 그림이 먼저고 (뱃지는) 그림에서 파생된 형태죠.

윤율리 : 어, 아니 근데 너무 앞서간거 같애요.

박현정 : 그럼 진행을 부탁드려요ㅎㅎ. (일동 웃음).

윤율리 : 먼저 자기소개랑..

김민경 : 작업에 대한 간단한 설명….

윤율리 : 자기소개!

박현정 : 자기소개! 평면작업을 하고 있고요, 주로. 굿-즈 카탈로그에 실릴 소개글이랑 거의 비슷합니다만, 주변에서 접하는 시각환경에 대한 고민들을 평면으로, 미술적인 드로잉으로 풀어내고, 그것들을 후작업으로 연결해요. 드로잉을 스캔해서 컴퓨터 그래픽 툴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써서 드로잉에 있던 요소들을 표본으로 추출한다거나? 그것들을 다시 정렬하면서 형식/형태가 분쇄되어지는 작업을 합니다.

김민경 :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 그럼 드로잉은 작업을 위해서 사용되는 소스 같은 역할인가요?

박현정 : 그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그림은 그림대로 그리고, 그걸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들어서. 그림을 어차피 스캔해야 하거든요. 왜냐면 보관면에서 아카이빙에도 필요하고. 그런데 스캔하고보니 그걸 가지고 놀 수 있겠더라고요. jpg 파일로 할 수 있는 걸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후작업이 나왔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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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시각환경’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다고 하셨는데, 이게 어떤 의미에요?

박현정 : 음. 일단은 제가 이미지가 소비되는 속도에 관심이 있어서. 텀블러에 포트폴리오를 모으는데, 다른 계정을 또 파서 레퍼런스로 삼는 이미지들을 막 모으고 그래요. 그걸 스크롤링하며 소비하는 속도랑 내가 작업을 올리는, 작업을 생산하는 속도 사이의 갭이 크단 걸 느꼈어요.

윤율리 : 그 계정에 모으는 레퍼런스들의 주제가 있나요?

박현정 : 몇 개의 키워드가 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려고 하는 상황들을 수집하고 있어요. 그런 이미지들을. 증식하는 이미지나 폭발하는 이미지나, 그런 것들을 검색해서 찾고 수집하고, 거기서 점점 파생되는 것들로 ‘이게 뭐지?’ 싶은 뭔지 모르겠는 것들을 일단 막 모아요ㅎㅎ. 물론 작업을 할 때 그런 키워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아요. 무언가를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분명 (수집하는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을까요? 제 안에서 나오는 이미지들이란게 제가 접하고 있는 환경을 필터처럼, 말한대로 그대로 드러내는….

윤율리 : 말한대로 그대로? 지금 되게 이상한 말 많이 하신거 알죠, @%^@$#% 이런 뜻인가. (일동 웃음).

박현정 : 제가 인터뷰 녹취 한 번 푼 적이 있는데, 어휴 진짜… ㅎㅎ.

김민경 : 수집하시는 이미지들에 대한 설명을 더 듣고 싶네요.

박현정 : 그냥 보여드리는게 제일 빠르긴 한데. 꼭 검색을 해서 찾는다기보다는, 제가 여러 계정에서 타고 타고 타고 수집하는거라서, 이미지를 특정한 태그나 카테고리로 묶기가 어려워요. 단어로 뭐라고 설명을 하기가 조금.. 재현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고 그런 경계에 있는 이미지들입니다. 간혹 gif도 있고. 주로 어떤 형태를 설명하는게 많아요. 모아놓은 것도 많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추상이 아니더라도) 어떤 재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영감을 받는 루트가 있어요. 그걸 설명하는게 작업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긴 해요. 왜냐면 다 너무 뻔한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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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먼저 드로잉을 하시고, 그걸 스캔해서 디지털화한 다음에 후가공을. 그렇다고 드로잉이 하나의 소스에 불과한 건 아니라고 하셨거든요. 근데 드로잉으로서의 작업과 이후에 가공되서 나오는 결과물로서의 작업이 느낌이 많이 달라요. 이미지가 소비되는 속도라든가, 관심을 두시는 것들도 후자에 훨씬 잘 붙어요. 드로잉을 할 때 그 과정을 다 염두에 두나요?

박현정 : 그렇진 않았어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건 조금… 가던대로 가고 있고요. 후작업은 나중에 붙은 건데, 그것도 그것대로. 어떻게보면 패턴이 생겨서 두 개가 약간 평행하게 가는거 같아요.

김민경 : 어쨌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작업이네요.

박현정 : 한 번 이렇게 쭉 진행이 되니까, 재밌는 건, 그림을 그리고 그걸 스캔해서 분쇄하고 나서… 그게 돌아오진 않아요. 방향이 그걸로 끝나요. 그 싸이클이 반복되는거죠. 그럼 이제 또 그리고, 또 분쇄해서 없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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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원래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하는데….

박현정 : 판매에 대한 질문이죠?

윤율리 : 그냥 자기 얘기를 더 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별로 판매에 대해 할 얘기 없지 않나?ㅎㅎ. 작가를 이해해야 그 사람의 ‘굿-즈’가 읽히니까. 변명좀 해보세요 얼른.

박현정 : ㅎㅎ아 그럼 설명을 더 붙여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제가 그림 그릴 때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항상 ‘통제’하고 ‘제어’하는 것에 고민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이 아니더라도 이전 작업들, 설치/영상할 때도 상황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제어가 안되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이런 것들을 시각화했었는데.

김, 윤 : 아~

박현정 : 그림을 그릴때도 제어가 안되는 속성들, 가령 뭔가 양적으로 너무 갑자기 불어나거나, 그런 예로는 쓰나미라든지 여러 가지 자연재해에서 발생하는 예측불가능한 사고라든지…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말 그대로 속도가 제어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들? 그게 그림으로 표현될 때도 시각언어 간에 제어의 문제가 또 있어요. 잉크펜으로 그리기 시작했을때 얘네를 화면 안에서 얼마나 제어할 것인지, 좀 반대되는 속성으로 패턴을 넣거나 색/면을 넣거나, 어떻게 화면을 구성해 나가는지도 다 그 상황을 컨트롤하기 위한 거잖아요?

윤율리 : 음 그렇죠.

박현정 : 그걸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도, 더 이상 그대로는 유효하지가 않으니까.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서. 그래서 후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제어가 훨씬 강화되는 경우죠. 컴퓨터 알고리즘, 그래픽 툴의 알고리즘을 빌려 쓰는 방식으로. 거기선 몇 번의 클릭으로 걔네가 갖고 있는 정렬의 법칙이 너무 쉽게 달라질 수 있어요. 제 얘기로 돌아가자면… 제가 직접 몸으로 대면하는 부분에서 컨트롤이 안되는 것들을 이런 방식으로 통제하려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설명이 좀 되나?

김민경 : 현정씨 작업을 웹에 올라온 이미지로 주로 접했었거든요. 그런데 얘기를 들으니까 더 분명하게 느껴져요.

박현정 : 음… 그걸 다시 어떤 부분만 따서 표본을 만들고, 분쇄하면서.. 그리고 그걸 뱃지로 만들죠. 분쇄하는 건 쉽기 때문에 간혹 제 그림말고도 구글에서 검색한 이미지, 가령 ‘이미지’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 결과들을 다 모아서 분쇄를 한다거나. 그래서 후작업은 양적으로 많이 늘어난 부분이 있고요. 반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굉장히 천천히 감질나게 이뤄지고 있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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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자기소개랑 작업이 너무 잘 이어지는 느낌이에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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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마지막으로 전시한 건 언제였어요?

박현정 : 6월에 반지하에서 프로젝트를 했어요. <정지 이미지>라는 타이틀이었는데….

윤율리 : 정지 이미지?

박현정 : 네. 일시정지할 때. 제가 작업하다보면 종이에다 하다보니까 실행취소가 안되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왜 안될까?’ 하고선.. 제가 그림을 그리고나면 사람들이 프린트한거냐는 질문을 또 종종 하거든요. 그래서 종이에다 과정 과정을 다 프린트하고 그 위에 덧그리고, 이런 식의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한 레이어를 그린 다음에 세 장씩 출력해서 그 위에 또 레이어를 그리고, 또 세 장씩 출력하고 그렇게 점점 더 많아지는데. 근데 그걸 제 작업이라 생각하진 않고요. 그중 성공적인 시각언어가 생긴다면 작업할 때 가져다 써먹는거죠. 아무튼 <정지 이미지>, 그러니까 ‘일시정지된 이미지’라고 해서 그 과정을 쭉 나열했었어요.

김민경 : 지금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이 프로젝트인가요?

윤율리 : 여기 어디에요?

박현정 : 반지하요.

윤율리 : 왜 이렇게 넓어 보이지?

김민경 : 흰색의 힘ㅎㅎ.

박현정 : 이 벽이 끝이에요ㅎㅎ. 디테일을 보면 프린트가 됐을 때 차이가 나요. 예를 들어, 광택이라든지 약간 엠보싱 같은거라든지. 아크릴을 썼기 때문에 효과가 생기는데, 프린트를 하고 나면 그게 완전히 죽어버려서 그냥 껍데기만 남는 거예요. 그 차이를 보라는 건 꼭 아니고, 기회가 돼서 한 번 다 펼쳐본거죠.

김민경 : 고민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 이상의 의미가 나온 것 같은데.

박현정 : 음… 그거는 근데 너무 뻔해서… ㅎㅎ그냥 전 작업할 때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인 쪽으로 상태를 바꿀 수 있는지, 어떻게 포맷이 바뀌는지, 그랬을 때 내가 설정한 값이 뭔지, 이런 것에 좀 더 관심이 있고… 의미적으로 이게 어떻게 바뀌는지는 물론 따라 붙는게 있겠지만, 그건 사후에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묻어두고. 그냥 그래요.

윤율리 : 작업이 시작과 끝이 없는 느낌, 그러니까 작업이 일시적으로라도 완료되는게 아니라 어떤 상태에 계속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명확하게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호해요. 그걸 다 하나로 보면 작업이 진행되는 시간이 엄청 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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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 그림을 판매할 때는 딱 액자화한 그림으로서 팔아요. 작업 과정에서 떼어놓고.

윤율리 : 그림만 액자에 넣어서?

박현정 : 네. 그림들은 거의 다 액자에 넣어요. 그래서 그걸로 끝나고. 후작업 이미지들은 모여있는 상태가 다 제각각인데 아마 걔네를 연결해서 설명하려면 약간 율리씨 말씀처럼 호흡이 길어지겠죠. 근데 뱃지도 제가 표본들을 한 300개에서 500개 정도 만들고 있는 단계인데요. 팔려고 만들었다기보단 ‘얘네들이 어떤 형태로 또 포맷을 바꿔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원데이터는 벡터 이미지니까 어떤 식으로든 가능하거든요. 크기도. 다양성을 좀 늘리고 싶어서 처음에는 스티커를 생각했는데, 스티커로 했을 때 제가 조금… 작업할 때 중요한게 질감인데 원하는 질감이 안나오는거예요. 매끈하고 광택이 있으면서 모양도 라인에 따라 생기고, 엠보싱도 있으면 좋겠고….

윤율리 : ㅎㅎ.. 거 참.

박현정 : 머리속에 추상적인 상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까 하다가, 금속 뱃지가 제일 좋겠다.. ㅎㅎ 그렇게해서 뱃지를 만들었어요. 막상 만들고나니 그게 앞뒤 맥락 없이 예뻐서 몇 개를 더 만든거고, 기왕 만든거니 어떻게 팔까 하다가 뱃지는 뱃지니까. 또 역시 그에 맞는 값을 가져야지, 해서 3천원에 팔았는데. 요즘에는 제가 박스를 만들어서 뱃지 시리얼넘버도 찍어요. 그런 수작업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원에 팔고 있어요. 작업을 판매하는 과정에선 얘네들을 그냥 서로 떼어내도 되는거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작가들은 굿-즈에서 안에서도 자기 작업들이 한 데서 보여지길 바라잖아요. 저는 그런 욕심이 딱히..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취하고 싶은 걸 취하는거니까 어차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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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작업비는 많이 드세요? 어떻게 충당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

박현정 : 음 잘 모르겠어요. 그림 그릴때 말이신가? 별로 많이 들진 않아요ㅎㅎ.

윤율리 : 뱃지는 제작비가 많이 들진 않나요?

박현정 : 그거는 딱 나와요. 단가가 1,700원인데 최소 수량 100개니까. 늘 한 번에 17만 6천원. 근데 그거야 선택사항이라서 논외인거 같고. 작업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다 재료비에요. 종이값이랑 아크릴물감, 이런거. 그림 그릴 때 들어가는거. 나머지는 출력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져요. 잉크젯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현수막에 뽑을 것인지? 몇 만원씩 차이가 나는데 조율을 좀 할 수 있어요.

윤율리 : 근데 뱃지 단가가 1,700원인데 3,000원에 파는건 진짜 너무 싼데.

박현정 : 그래서… 그때는 주변 사람들한테만 팔았어요. 반지하 굿즈g8ds에는 값을 올리고 박스를 만들어서 만원에 올렸고요.

윤율리 : 그럼 그런 작업비는 어떻게 충당하세요?

박현정 : 돈을 벌죠.

윤율리 : 개인적으로?

박현정 : 네. 돈을 벌고, 아니면 기회가 되서 지원금 받으면 거기서 쓰고. 어차피 작품을 팔아서 그 돈을 충당한 경험은 거의 없고요. 최근에 드로잉이랑 프린트 작업 두 점을 반지하 굿즈g8ds에서 팔았는데, 그게 바로 작업 비용으로 들어가느냐? 사실 그건 아니고 그보다 더 큰 부분들을 해결하기 위해 쓰죠..

윤율리 : 작업이 팔리기에는 적합한 형태라고 생각하세요?

박현정 : 살려면 살 수 있어요. 지금까지 드로잉 두 번 팔았고, 제가 분쇄한 이미지를 70cm 폭으로 프린트해서 그거를 하나 팔았었고, 뱃지는 판다기보단 그냥 누가 가져가셨구나, 정도.

윤율리 : (뱃지는) 카운팅을 따로 안하시나봐요.

박현정 : 네.

윤율리 : 팔려고 노력을 하긴 해요?

박현정 : 아뇨. (일동 웃음).

김민경 : 어쩐지.

박현정 : 근데 어디서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랐다는게 첫 번째 문제였어요. 저는 그래서 액자를 하는 이유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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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작업이 팔리면 근데, 뭐 당연히 좋겠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점에서 좋은거죠?

박현정 : 그걸 갖고 있어봤자ㅎㅎ. (일동 웃음).

윤율리 : 재고처리?

박현정 : 네ㅎㅎ 품고 있어봤자 저한테 의미가 없어서….

윤율리 : 사실 요즘 같아서는 순수하게 작업을 팔아서 안정적인 수입을 갖는다는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요?

박현정 : 예 맞아요.

윤율리 : 작업이 팔리면 뭐가 좋은지를 그래서 여쭤본건데, 어차피 그게 큰 돈을 벌어다 줄거란 기대는 없을 것 같고. 그래도 그게 좋다 함은, 자기 작업이 타인들에게 확장되고 전달된다는 의미에서인가요?

박현정 : 그런거 같아요. 제가 갖고 있으면 사실 안보거든요. 이미지 볼 때는 주로 파일로ㅎㅎ. 그거 다 (보관을 위해) 포장해 둔 상태여서 굳이 볼려면 귀찮은데, 작업실에 짐처럼 갖고 있느니 파는게 가장 합리적이고, 근데 안팔려서… 안팔리는게 문제지만, 네, 내 손을 떠난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죠. 누군가한테 전달이 되서 그 사람이 보고 이런게 있구나, 하겠죠. 갖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어서 많이 버리기도 했어요. 이사할 때마다.

윤율리 : 그림도 그정도면 조각 같은건 생각만해도….

김민경 : 설치는 100% 폐기.

윤율리 : 가끔 창고 필요해서 대학원 가시는 분들도.

김민경 : 전 전부 바로 폐기거든요. 어떻게 가지고 있을 수가 없으니까.

박현정 : 김대환 작가님도 다 폐기ㅎㅎ.

김민경 : ㅎㅎ죄다….

박현정 : 미팅할 때 사람들이 다 입을 쫙 벌렸어요. 작업들 전부 어딨어요? 하니까, 버렸어요, 라고 하심ㅎㅎ.

윤율리 : 작가님들이 자기선에서 감당이 안되는 것들을, 특히 이사다니면서 많이 처분하잖아요. 근데 그게 사는 사람한테도 똑같아요. 그니까 내가 지금 피아노를 못사는 것처럼. 이사 생각하면 답이 안나오거든요. 우리가 굳이 굿-즈라는 걸 만들어보자 한다면, 그런 이유도 분명 있었어요. 내가 무슨 모더니즘 대폭발하는 대저택에 살지 않더라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계속 볼 수 있고. 이런 속성이 미술품에도 있길 바라는데, 기존 작업들이란게 이런점을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김민경 : 작가들이 자기 작업을 보여주는, 그러니까 전시회를 통해서 이미지를 전달하려고만 하지 어떤 식으로 그걸 유통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하는 것 같아요. 전 이번 굿-즈에 참여하게 된게 그런걸 능동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윤율리 : ‘전시’ 시스템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화이트큐브의 연장에서 그림을 걸고 동선을 짜고, 결국 일시적으로 나열된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최적화된….

김민경 : 그래서 저희 처음에 장소 정할때, 우스갯소리로 모델하우스에서 하자고ㅎㅎ.

박현정 : 호텔 아트페어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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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왜 하필 패키징이에요? 전 그게 이해가 되는면도 있고 아닌 면도 있는데, 말씀하셨던 것처럼 박싱은 작업의 프로세스에 있는건 아니잖아요? 패키징이라든가 액자라든가 그런 식의 친절함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걸 구매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많이 주게 되요?

박현정 : 그림을 확실히 액자에 넣은 형태가, 제가 보관하기 편하고요. 종이니까 상하기 쉽거든요. 또 어쨌든 액자로 사는게 그들 입장에선 당연한 것 같고요. 근데 뱃지 같은 경우는 제가 일부로 패키징을 만든거에요. 그 안에 있는 뱃지가 어떤 출처를 갖고 있는지 가리는게 작업의 공정과 맞아서. 그래서 사는 사람이 뽑기처럼 뜯어보는 그런 면도 있어요.

윤율리 : 특별한 패키징 매뉴얼이 있어요?

박현정 : 매뉴얼은 아니고, 걔네를 유형별로 정리해서 타입별로. 예를 들어 A타입이고 그게 몇 번째 이미지에서 몇 번째로 추출되었다, 뭐 이런거. 알파벳이랑 숫자랑 같이 되어 있는데, 그걸 스탬프로 찍어서 표시를 하죠.

김민경 : 이미 굿-즈가 체화된 작가인거 같아요ㅎㅎ.

윤율리 : 살아 움직이는 굿-즈ㅎㅎ.

김민경 : 되게 재밌는게, 물론 사람마다 작업하는 방식이 다 다르지만, 원래 가지고 있는 고민에서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장치를 도입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결과물이 여러 갈래로 나오고, 나중에는 포도송이처럼 막 이만해질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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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 뭐가 옳다, 그르다보다 저는 무엇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지를 (작업에서) 따지거든요. 예전에는 큰 작업, 150호짜리 캔버스 작업 같은 걸 할 때, 일단 사이즈가 커지면 몸을 쓰게 되잖아요. 서서해야 되고, 팔을 써야되고, 그게 되게 불편했어요. 그래서 점점 사이즈가 커질 수록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큰 캔버스가 너무 저한테는 비효율적인거에요. ‘내가 지금 작업실 폭이 이만해서 공간도 없는데, 큰 사이즈가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까지 난리법석을 떨어야하나?’, 그리고 옮기는 것도 불편하고 여러가지로 너무. 물론 사이즈가 의미가 있는 작가도 있어요. 하지만 전 ‘확실히 아니구나’ 싶었어요. 데스크로 넘어와서 앉아서 작업을 하는데, 그게 훨씬 심리적으로도 좋았고. 전시를 한다고 쳤을 때도, 이걸 어떻게 보여주지 계속 고민을 했는데, 원본을 보여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거에요. ‘나 이만큼 많이 했어!’ 이것도 아니고. 사실 저도 (박스에 넣어놓고) 제 작업을 그렇게 열심히 안봐요. 그래서 웹에 있는걸 스크롤하는 화면을 녹화해서 영상으로 틀었어요. 이걸 굳이 모으고 보관하는 것도 흑연이나 목탄을 쓰면 굉장히 잘 번지고….

김민경 :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간, 아까 얘기했던 그런 것들과 또 연결이 되는거에요?

박현정 : 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레퍼런스 찾을 때도. 슥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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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작가로서 요즘 고민?ㅎㅎ.

박현정 : 아 시간이 없어요. 일하다보면. 작업의 호흡이 길기 때문에, 이 호흡을 좀 더 단단히 해서 얼른 다음 스텝을 진행해보고픈 것들이 있는데, 정말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라. 비용면에선 다른 작가보다 고민을 덜 하는 것 같아요. 많이 안드니까. 엄살부리지 않으려고 노력중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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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수집하고, 그걸 파쇄하고, 재배치하고, 그런 평면작업이란 점에서 가까이로는 윤향로 작가와도 공통점이 있네요. 시각적 역동성이나 의도의 디테일 측면에서는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박현정 : 아, 땀방울이나 그런 것들도 나오고.

김민경 : 윤향로 작가 작업도 굉장히 좋죠.

박현정 : 이미지로서는 비슷한 면이 많죠. 바탕에 레이어들이 겹쳐져 있고. 어떤 효과를 부여하고, 프린트하고. 그런데 저는 어떻게 정렬될지 과정중에는 감이 잘 안오거든요. 제가 구글에서 서치한 걸 그냥 쭉쭉 하염 없이, 스트레스 풀 듯이. 검색의 결과물들을 싹 긁어모을 때는 용량별로 해상도별로 결과가 무척 달라지기도 해요. 프레임만 덩그러니 남아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윤율리 : 어떤 툴을 사용하시죠?

박현정 :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미지를 불러와요. 그럼 자동으로 그 이미지를 트레이스하는 기능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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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선을 따는 도구 말이군요.

박현정 : 네. 그룹 해제를 한 상태에서 언라인을 이렇게…. 근데 툴에 대한 건 제가 감당이 안되어서. 그 부분은 아직도 고민을 하고 있어요. 툴에 무엇을 의존하고 의존하지 않을지. 일단 지금은 이런 분쇄가 재밌고… 혹시 분쇄기 보신 적 있어요? 그거 보기만해도 너무 통쾌하던데ㅎㅎ. (일동 웃음). 공업용으로 나오는게 있어요. 거기다간 뭘 넣어도, 저런 의자를 넣어도 다 분쇄해버려요. 타이어라도 넣으면 정말… 너무 멋져….

김민경 : 뭔가 되게 파괴적이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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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아예 프로그램 같은 걸 만들어볼 생각은 없어요?

박현정 : 그런 얘기도 종종 들었어요. 근데 아직은 못하고 제가. 혹시라도 그런 작업을 하면 직접 프로그램을 짜진 않을 것 같아요.

김민경 : 개발자한테 부탁을? 그런데 현정씨 생각이 알고리즘 구조와 비슷해서, 프로그램을 짜면 되게 잘 하실거 같아요.

박현정 : 뭐 안그래도 많이 찾아봤는데, 재료비도 너무 많이 들고ㅎㅎ. 관심은 있어요. 제가 논문 쓰면서 하염 없이 리서칭에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주식시장에서 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알고리즘을 접했어요. 거기선 큰 액수의 돈을 잘게 찢어서 넣었다 뺐다, 이걸 엄청 빠르게 진행하거든요. 근데 몇 해 전에 그 알고리즘이 충돌해서 지수의 9%가 갑자기 증발해버린 사태가 있는데, 그걸 아무도 원인 분석을 못하는 거에요. 왜냐면 그건 이미 계산이 불가능한 영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알고리즘이 사실 가시적인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심지어 서버를 단 0.00 몇 초라도 빠르게 하려고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뭘 뚫고, 말그대로 하드웨어 케이블을 까는거죠. 그 해저 케이블이 미국의 지리/지형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테드 강연을 하나 접한 이후로 알고리즘의 세계에 풍덩 빠졌다가….

김민경 : 우선은 무사히 돌아왔군요ㅎㅎ.

박현정 : 교수님한테도 혼나고. “너 뭐하니?” 라고. 포토샵에서도 톨레랑스 값을 정해주잖아요. 그런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이런 부분에 늘 관심이 있기는 한데, 관심만으로 바로 작업에 가지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건 한 번이라도 그래픽 툴을 써본 사람들이라면 다 건드려봤을 부분이기 때문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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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리 : 저희가 준비해 온 질문은 끝이 났습니다. 지금 어쨌든 굿-즈를 위해 작업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에 대한 기대치라든가, 전망이라든가.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있나요?

박현정 : 사실 제 작업보다도 행사가 잘 기능하기를 너무나 바라고 있고… 그리고 이게 지속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오프라인샵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여러가지 준비가 갖춰져야 하겠지만. 아니면 1년에 적어도 한 번, 두 번 정도는 팝업 형태의 정기적인 무언가라도? 굿-즈가 온전히 자기의 갈 길을 갈 수 있길 바래요. 반짝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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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김민경, 윤율리
편집 : 윤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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