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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악마의 젖꼭紙’ 대표인 이준용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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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 자기소개 및 굿-즈에 들고오는 작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이준용 : 도서출판 ‘악마의 젖꼭紙’는 대표 이준용을 포함, 2명의 소속작가(이준용, 이명오)로 이루어진 그림책 전문 출판사입니다. 크게 두 종류의 수익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소속 작가들의 ‘널브러진 그림들’을 스캔한 뒤, 레이저 출력하여 제본한 책을 판매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고객이 원하는 드로잉을 라이트박스나 먹지 등의 복제 매체로 ‘거의 흡사하게’ 흉내낸 수제 드로잉을 합리적 가격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굿-즈에서는 이 수제 드로잉을 판매하려 합니다.

강정석 : 수제 드로잉이라니, 그럼 기계로 뽑는 드로잉도 있나ㅎㅎ. 책은 어디에 입고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점에서는 못 본 것 같아요.

이준용 : 현재는 없을 겁니다. 일단 독립서점에다가 몇 권 밑지고 팔아보긴 했습니다. 근데 워낙 소규모 출력인지라…. 가격이 비싸 상품성이 떨어져서, 혹은 지나치게 아마추어답다는 이유로 서점 측에서 위탁 판매를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제 방에 재고만 쟁여놓고 있습니다. 사실 책을 서점에서 판매거부를 당하면 이게 책인가 싶습니다…. 그것두 대안적인 서점에서 판매 거부를 한다는 건 저희 책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컨텐츠의 문제는 작업을 좀 더 열심히 하면 되겠는데, 단가를 낮추는 문제에는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강정석 : 아니 그럼 어떻게 해요?

이준용 : 돈이 많은 수 밖에요. 근데 제가 돈이 많으면 미술을 열심히 할까요? 아마 안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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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 ㅎㅎ서면 인터뷰인데 자꾸 실제로 웃고 있네요. 드로잉을 책으로 엮겠다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에 봤던 학부 졸업전시에서 여러종의 드로잉북을 선보이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준용 : 그림들이 쌓여만 가는데 어디 마땅하게 전시할 기회가 없고, 또 굳이 갤러리 벽에 걸어 전시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도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냥 이렇게 하면 저 뿐 아니라 저처럼 빌빌대는 다른 친구들도 작업을 지속할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강정석 : 앞서 ‘수제 드로잉’이라고도 언급하셨는데, 어쩌다 그런 방식을 생각하게 되셨나요?

이준용 : 한 번은 어디 갤러리에서 제 그림을 팔자고 아는 선생님 통해서 연락을 받았는데, 혹시라도 정말 팔리면 졸전 때 걸 그림이 없었던 관계로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때 판화처럼 그림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강정석 : 개인적으로 졸전에서 본 드로잉 중 한 점을 매우 가지고 싶었어요. 조상님께 사죄하는 드로잉 벽에 걸어두면 일상이 좀 유쾌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스마트폰으로 슬쩍 찍어서 저 자신을 달랬는데, 벽에 거는 거랑 폰으로 보는 거는 다르더라고요.

이준용 : 학부 졸업전시를 마칠 즈음, 울산의 어디 사장이라는 분께서 저의 판화작품 원본이 사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었어요. 약 2주 동안 가격합의를 했습니다. 신진작가의 드로잉 시가를 몰라서 그냥 제 나름대로 작업 가격을 산출하는 공식을 만들어 구매희망자에게 그 가격의 타당성을 어필하였습니다. 가격은 대략 6만 원정도로 기억합니다. 하여튼 제 국민은행 계좌(527802-01-284065 이준용)를 넘겨주고 입금을 기다리는데, 그 울산 사장님이 갑자기 잠수를 탔습니다. 저도 솔직히 팔기 귀찮고… 다시 연락하기엔 자존심도 있어 그냥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강정석 : 아니 갑자기 계좌번호는 왜 공개하시는 건지. 작업에 드는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는지 여쭤보는게 다음 질문인데 이미 축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준용 : 그림만 그리면 작업비는 별로 안 듭니다. 저는 대부분 저렴한 종이 쪼가리에 그림을 그려서. 그러나 입체나 설치작업을 하게 되면 작업비가 많이 듭니다. 학부 때는 아르바이트 하면서도 근근이 살만 했는데 요즘은 좀 힘이 듭니다. 웬만하면 돈 드는 작업은 잘 안해요. 해봤자 욕만 먹어서 안하는 게 속편하기도 합니다. 미술이란 것이 이것도 구리고 저것도 구리고 서로를 구리로 명명하며 친목 도모하는 유사 학문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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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 작가로서 요즘 고민하시는 부분은?

이준용 :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내 작업은 왜 이렇게 후진 걸까? 미술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왜 잘하지도 못하는 미술을 여태껏 붙잡고 있나? 미술이 무슨 힘이 있긴 한가? 그러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런 근본적인 고민에 대해 어느 하나 명확한 답이 없다는 게 고민거리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 주위의 사소한 일상, 지엽적인 문제들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두 눈이 밖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 보고있으니 지겹네요. 작업을 그만두든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를 하든지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강정석 : 요즘 많이 힘드시군요ㅎㅎ. 괜찮은 겁니까?

이준용 : 그래도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골골대던 동료 작가를 닦달하여 새로운 드로잉북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소박한 일에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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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 페이스북에서 드로잉을 시급으로 판매하겠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나온 이야기인가요?

이준용 : 그게 바로 ‘수제 드로잉’입니다! 라이트 박스나 먹지 혹은 프로젝터 등을 이용하여 원본 드로잉을 다시 그리는 거죠.원본과 거의 흡사하게 수공 복제하는, 핸드메이드 드로잉인데요. 이 경우 작품 가격의 산출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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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그 해의 최저 시급.

B = 그 작업을 옮겨 그리는데 총 소요되는 시간. (15분 단위로 계산).

C = 작가가 미술과 관련하여 자신의 인생을 투자한 햇수.

D = 원본을 그리던 당시의 마음의 고통. (일반적으로 작품의 시기별 분류는 연도별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작가가 10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의 작업 창작에 소요되는 육체의 감가상각은 1년으로 계산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촉진하는 인생의 쓴맛을 상수 α로 변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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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B * C * D(1.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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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1년도의 작품 가격 산출 예시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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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5580원.

B = 15분.

C = 입시 미술 기간을 제외한 대학 재학 6.5년.

D = 연인과의 이별로 담배를 두 갑씩 피고 탈모 진단으로 인한 스트레스 5 + 다리 수술 3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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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0 * 0.25 * 6.5 * 1.8 = 16,300원. (100원 미만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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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 최저 시급을 고려한다는 점이 재밌네요. 그래놓고 또 마음의 고통은 왜 계산해ㅎㅎ.

이준용 : 구매자들이 작업과 노동을 정확한 등가가치로 환산할 수 있도록 고안하였습니다. 저라는 작가가 미술생산자가 되기까지 투입한 시간과 비용이 억울하진 않다고 느낄 수 있을 방법을… 그런 심리적 기제를 숫자로 변환한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뭐만 하면 수제 고로케, 수제 햄버거, 수제 소세지 등 ‘대량 생산된 정성’이라는 모순적 가치에 ‘수제’라는 이름을 씌우지 않습니까? 저희 출판사도 이 시류에 편승해보려 합니다. 저희 출판사는 비쌀 수록 신비화되는 미술의 전통적인 사기수법을 지양합니다. 그림들이 대체로 저렴한 종이 위에 형편없는 솜씨로 그려져서, 따라 그리기 쉽다는 것도 이러한 방식을 가능케 하는 물적 토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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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 부디 건강하게 재밌는 드로잉 많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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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강정석
편집 : 강정석, 윤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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