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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이번 행사 이름이 굿-즈거든요 선생님.

정덕영 : 굿-즈?

이제 : 네, 번역하면 ‘상품’이란 뜻이 될 수도 있고, 젊은 작가들이 미술시장에서 소외된지 꽤 오래됐잖아요? 작품이 팔리는 일도 작가들 아주 일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요즘 신생공간이라 불리는 젋은 예술가들의 공간도 새로운 판매의 방식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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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영 : (미술시장이 잘 되려면) 일단은 많이 알려져야겠지? 이런 전시들이 있다는게 골고루 알려져야 되는데, 그게 사실 좀 그렇게 만만치 않잖아. 유명한 작가나 미술사에 언급되는 외국 작가의 전시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가잖아. 근데 그런 경우에도 자기 취향대로 ‘아 이 그림 참 좋다’ 하는 분위기는 없지. 그런 것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가 부족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옥션 같은 미술시장 안의 사건과 문제들도 일반 대중들의 그림이나 예술에 대한 관심을 꺾는데 일조했고 말야. 이를테면 나는 콜렉터들이 90년대보다, 7~80년대에 이미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시장과 자본 원리 때문에 그렇게 된거지. 처음엔 그림을 좋아서 소장하던 사람들도 (옥션이나 미술시장에서) 5만원에 샀는데 10만원이 될 것이냐 20만원이 될 것이냐, 이런 문제로 마치 부동산 투기하듯이 그렇게 변해가는 경우를 많이 봤어.

이제 :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이시네요?

정덕영 : 그 계기가 바로 어떤 시장의 문제였다고 보는 거지. 상업갤러리들도 정말 힘들다 그러더라고. 옥션에서 한 번 나와서 뜬 그림들 있지, 그런 극소수의 작품들은 되는데 대부분의 수많은 다른 작품들은 안되는 분위기가 되었지.

이제 : 기존에는 거래가 되었던 작업들도요?

정덕영 : 그렇지. 거래가 됐던 작업들도 안된다고 그래. 얼마 전에 A 화랑 대표를 만났는데, 그 사람도 다른 계획을 하고 있더라고. 메이저급 화랑을 포함해서 제대로 가고 있는 갤러리들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 얘기도 하더라고. 그중에서도 B 화랑 정도를 빼고는 다른 메이저급 화랑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하더라고.

이제 : 어떻게 B는 가능할까요?

정덕영 : 작품가가 아주 비싼 작가들, 이를테면 외국 미술시장에서 비싼 작가라든가 국내에서도 특별히 비싼 작가들 덕분이지. 그런 작가들의 작품들만 거래가 되는, 뭐 그런 기획이 가능한 큰 자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거지. 아무리 좋은 작가가 있어도 그런 힘 없이는 좋은 전시를 기획해서 보여주기 어렵고 뜻을 펼치기가 이 시장 구조 안에서는 너무 어렵다는거야.

이제 : 요즘 추세가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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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영 : 나는 전문적인 컬렉터는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들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끔 유도해 본 적이 있었어. 젊은 작가위주로.

이제 : 어떻게요?

정덕영 : 친분이 있었던 기업가들에게 작품 소장을 권하기 위해서, 내가 같이 소장을 했어. 작가이고 교육자인 내가 선택을 하면, ‘아, 이 작품은 괜찮은 작품이다’라고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소장하는 기업인들이 있었거든.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제 : 작품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이자, 일종의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한 보증이 되었겠네요.

정덕영 :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게 하려고, 나도 같이 작업실에 가기도 하고, 특별한 전시 때 가서는 같이 구입도 해봤어. 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그래도 미대 교수에다가 평생 그림을 그렸고 또 나름대로 소장도 했기 때문에 ‘아, 저 사람이 구입하는거니까 괜찮겠구나’ 하며 같이 작품을 고르고 구입했던거지. 그 사람들은 재력이 있는 기업가들이지만, 나는 그럼 사람은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매번 구입하지 않고) 빠지기도 했지만, 뭐 몇 년간은 상당히 잘 되었어. 이런 방식으로 젊고 어려운 작가들 작품이 한 번씩 판매되면서 시장과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계획이었는데, 대체적으로 보니까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달라지더라고. 아까 얘기한대로 이 사람들도 공부를 하게되는데, 관심이 많아지면서 예술의 전당 같은 곳에서 들을 수 있는 미술시장에 관한 전문강의도 듣고, 그러다가 아까 얘기했듯이 어느 시점에서는 이 작품이 경제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

이제 : 투자로서요?

정덕영 : 그렇게 ‘투자’로 미술을 보면서 옥션과도 관계를 맺게돼. 옥션을 들여다보고, 서울옥션이니 뭐니 그러면서 젊은 작가의 작품보다는 유명한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무슨 뭐 ‘박수근 작품 나왔다더라’, ‘선생님, 와서 이 그림 좀 봐주세요’, ‘이 그림이 괜찮은 건가요?’ 이러면서 그런 (투자) 쪽으로 가버리더라고. 그들이 그렇게 끌려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상당히 실망을 하게되고, 그 이후로 관계들을 정리하고 그랬지.

이제 : 보통 진지한 컬렉터들이 처음엔 어떤 미술품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런 즐거움이 아닌 다른 방향의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군요.

정덕영 : 그렇지. 다른 즐김으로 가게 되는 거에요. 자기가 소장했던 것을 어디 옥션에 한 번 내놔서 경매의 즐거움을 맛본다던가 하면서 욕망이 다른 쪽으로 끌려가지. 그러다보면, 젊은 친구들의 좋은 작품은 어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을 하게돼. 정말 자신이 느끼기에 예쁘고 좋고, 이 작품에 관심이 있어서 선택하는게 진정한 컬렉터지.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부동산 투기꾼하고 똑같은거라고 얘기하곤 했었어.

이제 :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ㅎㅎ.

정덕영 : 막말로 그렇게 얘기했지. 미술시장에 좋은 뜻으로, 서로 도움이 되고자 끌어들였다가도 실망을 하게 되니까. 언젠가 이제한테도 어느 분을 소개한 적이 있었지?

이제 : 네. 2010년 개인전 이후에 선생님이 어떤 컬렉터 한 분을 소개해 주셨었죠.

정덕영 : 그게 초창기거든. 그렇게 해서 직접 작가랑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러나 그동안, 특히 2007년 이후 문제될만한 일들이 너무 많았지. 무슨 신정아 사건부터 시작해서 서미화랑 사건… 그 이후로도 어떤 미술시장 관련한 사건들이 계속 있었어. 이런 것들이 미술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 기회들을 전부 차단시킨 큰 사건들이거든. 그나마 2000년도 중반 정도까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조금씩 거래되기도 하면서 시장의 가능성이 있었는데, 2007년 이후로는 계속 하향곡선이 되었지.

이제 : 그 사건들로 정치인, 기업인과 메이저 화랑과의 커넥션 같은게 많이 폭로되었잖아요.

정덕영 : 그렇지. 그 시기의 악영향으로 나는 지금 젊은 작가들 전시장에 가면, 그냥 보는 것도 힘들어. 그들의 상당히 비관적인 현실이 먼저 보여지니까 힘들어요. 젊은 친구들이 참고 견디는게 참 대단한 일이지만 어쨌든 상황은 여전히 비관적이니. 그래서 사실, 처음에 젊은 예술가들이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작품들이 시장에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런 현실에서 도대체 무슨 좋은 얘기를 해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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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아니에요. 좋은 말씀만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아까 말씀하신대로 시장이 차단되고 분리되는데, 일부 메이저상업화랑들의 권력이 시장의 큰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이 여전히 막막한 상황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요. 이번 굿-즈에서는 작가들이 일반 관객들과 직접 만나는데요. 80명이 되는 작가들이 5일간 자기 작업도 설명하고, 팔기도 하고, 질문도 받고, 보러 오는 이들과 직접 부딪히게 되죠. 이게 얼마나 팔릴지, 얼마나 즐거운 이슈가 될지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기존 방식에 대한 극단적인 돌파구일지도 몰라요.

정덕영 : 일단 그런 경우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어떤 여건을 만들어 주는게 중요할 것 같네. 2000년도 초에 내가 시드니에 가서 전시를 한 번 했었는데, 호주 같은 경우 서울보다 상당히 건전하게 시장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옛날 창고를 개조를 해서 여러 갤러리들이 밀집되어 있는, 그런 곳들 중 하나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었어. 크게 광고를 한 전시도 아니었는데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내 작품을 사겠다고 와서 질문도 하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화랑쪽 사람에게 혹시 컬렉터와 잘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처음 본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거기 갤러리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작품을 선택해서 사는 경우가 많다는거야. 그 사람들은 전문 컬렉터들도 아니고 그냥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그림 하나를 사기 위해서 적금을 들기도 한다고. 그리고 그림 값이 서울에 비해서 상당히 낮았어. 비싼 작품들도 있지만, 가격이 낮은 작품들도 많이 거래가 되고 있었고, 작가의 유명세나 작품의 금전적 가치에 상관 없이 본인이 좋아해서 걸고 싶은 그림을 구입한다는 경우들을 많이 들었어. 그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걸 직접 목격하고, 서울은 인구도 많아서 (그런 분위기 형성이) 훨씬 더 잘될 것 같은데 왜 안될까를 고민했지. 상당히 위축돼 있잖아.

이제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정덕영 : 사실 대안공간 같은 곳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신경을 전혀 안써온 건 아니지. 그렇게 어렵게 상당기간을 애써왔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재 상황이 더 악화된 건, 아까 얘기했듯이 2000년대 이후 미술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로 인한 나쁜 사건들이 있었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곳 그림값이 좀 비싸다고 생각되거든. 미술대학을 막 졸업한 학생들의 작품가격도 높은 것 같아. 작품을 내놓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야. 누구 하나가 유명세를 타는 경우, 예를 들어 ‘배병우 사진이 떴다’ 그러면, 많은 경우 다른 사진작가들도 서로 상대적인 비교를 하면서 욕망을 드러내. 배병우 작품보다 내 작품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테지만, 많은 작가들이 허황된 자기욕망을 좀 내려놓아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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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그동안의 경험 속에서 컬렉터로서 작품을 보는 기준이 있으실까요?

정덕영 : 나는 컬렉터라고 얘기하면 안될 것이 특수한 경우라서 말이야. 내가 예술을 선택했었고 그림을 그리니까, 이 분야의 어려움을 아니까 나라도 이렇게 하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생기면, 작품 거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시작을 했어요.

이제 : 그래도 젊은 작가들을 추천하실 때 어떤 기준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정덕영 : 일단, 작품이 내가 볼 때 좋다고 생각이 들어야지. 적어도 그 기준이 ‘벽에 걸 때 보기 좋은 작품’의 기준은 아니었어. 80년대에 이런 생각을 했지. 당시 나도 젊은 작가였고 작품을 팔아본 적이 없고 누가 사지도 않는 그런 처지였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월급이 나왔어. 그런데 주변에 전혀 소득은 안되지만 자기 나름대로 작업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잖아. 그들의 작업을 진지하게 지켜봤었고, 그래서 아주 넉넉한 수입은 아니었지만, 월급의 20%나 30%는 꼭 작품을 사자는 생각으로 80년대부터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었어. 어쩌다보니 그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끌려온거지. 내가 좋다고 생각한 작품에 끌리면 구입을 하고 뭐 그런 식인데, 그렇다해서 뭐 특별히 바뀐 건 없었어. 이 작품이 어떻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고, 작품이 가진 생각이 좋고, 내 방식으로 괜찮다는 작업 중에서 사게 됐어. ‘일단 뜨면 난 안쳐다본다’는 기준이 있었어.

이제 : 엄청난 기준이신데요ㅎㅎ. 작품의 가치보다는 젊은 작가들의 태도를 보고 작품을 구입하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전체 소득의 몇 퍼센트를 작품구입으로만 사용하셨다는 이야기,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부분들이 선생님 삶의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덕영 :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보통의 컬렉터는 아니라는 얘기지. 그리고 아까 얘기한대로 (전문적인 컬렉터들과) 같이 구입도 해보고 같이 작업실도 가보고 교육도 하는 어떤 시도들이 세월이 지나다보니, 결국 상당히 실망스럽고 잘 안되더라고….

이제 : 지금까지 얘기가 통하는 분들이 있으세요?

정덕영 :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 : 그런 내용도 궁금합니다.

정덕영 :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컬렉터 1~2명의 힘이 일반화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어떤 한계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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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조금 다른 주제인데요. 저희가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은 영상부터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어떤 무형의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잖아요? 이러한 형태의 미술은 어떻게 미술시장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여전히 막연합니다만.

정덕영 : 지금은 그나마 대안공간들도 있고, 정부 지원 등 작가의 작업환경의 다양성을 지원하는 여건은 과거 7~80년대보다 더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더 열려 있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지원금도 찾아서 노크할 수 있는 상황들이 조금은 낫지 않아? 아까 얘기했지만 작품값을 좀 현실화시켜서, 그런 지원정책들과 협력해서 만들어 볼만한 프로젝트들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 작품가격을 현실화시켜야 한다는 말씀은 참 공감이 갑니다.

정덕영 : 일단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이제 : 네. 젊은 작가들도 본인들의 작업이 어떻게 소통되는지가 금전적인 이득 못지 않게 궁금한 것 같아요.

정덕영 : 그러나 다시 비관적으로 얘기하자면, 현실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구입층들이 작품이 좋아서, 작품에 특별한 감동을 받아서, 작품에 의미가 있어서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생각이 돼. 요즘에도 갑자기 시장에서 자본가들이 소위 ‘백색미술’ 해가지고 이슈를 만들어 엄청나게 가격이 뛰고 하는 걸 볼 수 있잖아. 그런 작품들을 구입하는 경우를 보면 일반 컬렉터의 생각을 확실히 알수 있지. 그 사람들이 그 작품이 좋아서 사겠어? 가격이 뛰니까 사고, 그러니까 그 가격이 계속 뛴단 말이야. 그래서 어쨌든, 그런 얘기를 하는 소위 투자 목적의 전문 컬렉팅 영역하고는, 일단 경계를 확실히 그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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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그래도 다른 한 쪽으로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동경과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삶 안에서 그런 욕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채우려 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좋은 미술애호가들과 현대의 미술은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까요?

정덕영 : 거기에 대한 여러 시도들을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해왔지 않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직 힘들잖아?

이제 : 말씀하신대로 있어왔죠. 아시아프ASYAF 아세요? 저는 직접 보진 못했는데, 대학생 공모 형태의 대규모 아트페어로 기억하고 있어요. 처음 미술시장이 호황이었을 때 제법 잘팔리고 반응이 뜨거웠거든요. 그러나 저는 이게 성과보다는 젊은 작가들에게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라고 생각하는데요.

정덕영 : 어떤 부작용인가?

이제 : 여러 차례 들은 얘기인데, 예컨대 대학생들이 방학이든 학기중이든 아시아프ASYAF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학부 때부터 작품가격을 열심히 불려가는 이들도 있었죠. 극사실화 같은, 팔리는 유형도 확실했고요. 그런 반응들을 일찍 경험하게 되면 젋은 작가들에게는 부작용이 생기는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팔리면 일찍 어떤 가능성들에 갇히고, 현장을 방문해 본 적은 없지만 젊은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례 중에, 제가 생각할 때 정말 별로인 케이스였어요. 상대적으로 이번의 굿-즈 같은 시도는 재미있는 기획인 것 같아요.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호주 예술시장의 분위기처럼요. 젊은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상당히 큰 규모로 해본다는 시도 자체가 제법 건강하고 유쾌하죠.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들도 많아요. 15초짜리 티저영상도 찍고, SNS도 적극 활용하고, 나중에 또다시 어떤 나쁜 예가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후회할 것 같지 않아요.

정덕영 : 일단은 작품을 많이 팔아야 된다는 부분은 좀 눌러두고, 같이 모여서 그런 재미있는 축제를 연다는 기분으로 하면 좋겠네. 그러다가 작품도 잘 팔리면은 더 좋고. 어떤 시행착오들은 과정에서 틀림없이 있겠지. 그런 것 보완해서 그런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까? 너무 처음부터 크게 생각하지 말고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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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기억에 남는 베스트 컬렉션이 있으신가요?.

정덕영 : 질문을 받고 갑자기 생각나는 작업이 있어. 배영환의 <남자의 길>.

이제 : 이제는 안 사시겠네요. 너무 뜨신 작가 아닌가요?ㅎㅎ.

정덕영 : 배영환 선생은 작품 값으로 뜨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작가로서 상당히 국내외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배영환 선생 작품 같은 경우는 지금도 소장가치가 있고 소장을 해줘야만 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

이제 : 아. 선생님의 기준이 조금 더 명확하게 느껴집니다. <남자의 길>이 기타로 만든 입체작업이죠? 그 작품을 소장하고 계시는군요.

정덕영 : 그런데 그 작품은 기증을 했어. 구입했던 많은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게 그 작업이야. 배영환의 다른 전시를 보고 내가 소위, 확 꽂혔던 경우가 있는데 그건 <유행가> 시리즈였어. 그중에서 버려진 합판에 유리를 깨서 악보를 구현한, 배영환이라는 작가를 모를 때 전시장에서 그 작품을 보고 나를 돌아본 적이 있었어. ‘ 80년대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었는가?’ 뭐 이런 생각… 그러니까 그 작품 자체에 감동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각인이 됐던 작품이 배영환의 <아베마리아>였지. <남자의 길>도 처음에는 ‘아 배영환이 뭐 누구야?’ 하면서 처음 봤던 전시였어. 대안공간 풀 초창기에 거기서 전시했던 작품인데 한 점도 안 팔리고 있었어. 그때 어렵게 내가 하나 구입한 작품이었지. 그 작품이 이제 가격이 좀 오르던데 풀에 기증했어. 기증한 이후로 어떤 화랑에서, 큰 화랑에서 그걸 구입해갔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아무튼 당시 배영환한테는 ‘내 작품도 팔렸어’ 라는 그런 작은 희망이 됐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고. 내가 샀던 가격보다 (되팔릴 때) 상당히 더 많이 받아서 풀의 기금으로도 쓰이고, 그래서 여러가지로 기억에 남는 그런 작품이야. 아, 이규철이라는 작가의 작업도 생각이 나.

이제 : 저에게는 낯선 작가분이신데요.

정덕영 : 나보다 홍대를 한 해 일찍 졸업한 분인데 영국에 갔다가 대학 졸업하고, 중동에서 한 10년 정도 활동을 하다가 들어와서 한 사진작업이야. 예전엔 설치작업도 하고 그랬는데, 돌아와서는 사진을 했어. 촬영도구도 자기가 만들고 세워서, 이를테면 180도를 수백장 컷으로 찍어서 정교하게 아날로그로, 가위로 끊어 맞춰서 구 형태의 작품을 만든다던가, 어떤 경우는 360도의 구형태를 만들기도 하고, 뭐 그런 사진작업이었지. 관훈미술관에서 유일하게 한 번 개인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전시를 보고 ‘아 참 좋다’ 느꼈지. 80년대에 내가 청담동에 갤러리를 잠깐 운영한 적이 있어. 그때 너무 기억에 남아서 그 분을 초대해서 전시를 했던 적이 있어. 3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기획전이었어. 그때 나온 작품들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러면서 내가 구입을 한 적이 있어. 근데 그 친구 세상을 떠났어요. 개인전이라고는 관훈에서의 개인전, 그리고 내가 했던 갤러리 81-12에서.

이제 : 그때 청담동은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었죠?

정덕영 : 그때 백남준의 누나가 운영하던 갤러리 미건이라고 있었어요. 미건이라는 갤러리가 하나 있었고, 내가 운영하는 81-12가 있었고, 그때는 지금처럼 갤러리가 많이 없었지. 일년에 내가 얼마만큼 이 갤러리에 투자해서 괜찮은 젊은 작가들을 소개해야겠다 생각했으니까,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대안공간이었지.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너무 버거워서 중단을 했어. 개관초대전이 박항률 선생이었고, 그래서 박항률 선생 작품도 소장하고 있는게 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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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전에 하셨던 말씀 중에서, 미술시장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인상깊었어요. 지금을 뭔가 망가진 구조로 본다면, 앞으로 미술이나 미술시장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라고 선생님께서 상상하시는 모습이 있을지요?

정덕영 : 나는 소위 주목 받는 작가들이 소수가 아닌, 많은 작가들이 많은 사람들한테 자기 성격대로 주목 받고, 소장되어지고, 그러면 참 좋을 것 같아. 뭐 미술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씬들에서도, 일단 주목을 받게 되면 사람들이 그 쪽으로만 계속 몰려가는 현상이 여전하니까. 그걸 그렇게 만든 자본주의의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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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이번 굿-즈엔 기존 작품 외에, 작품으로부터 나온 파생물들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덕영 : 아 그 얼마 전에 합정지구에서 전시했던 그 만화가 누구더라?

이제 : 아, 심흥아씨요? 작은 만화책과 드로잉을 전시 중에 같이 판매했죠.

정덕영 : 이번에 그 친구가 했던 전시가 잘 맞을거라고 생각해. 그런 방법은 작품을 구할 여력이 안되는 사람들도, 일반인들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에디션이 하나여서, 고가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을 다른 형태로 만들어서 이렇게 부담 없이 건넬 수 있는 방법들. 그렇게만 된다면 누구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되잖아? 그런 시도들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고, 그러다보면 그 작가가 좋아서 ‘정말 이 사람의 오리지널도 갖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거야 분명. 8~90년도에 판화 같은 것들을 집집마다 저렴하게 널리 보급하자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 기획도 소위 유명한 작가들, 비싼 작가들이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메이저 갤러리들 돈 버는 일이 되면서 실패하고 말았지.

이제 : 그러면 그때는 어떤 형태로 판화가 보급됐었나요?

정덕영 : 7~80년대 한창 뭐 판화 공방도 많이 생겼었고, 상당히 저렴하게 이 작품들이 보급될 여지가 있었어. 보통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들도 하나씩 가질 수 있게, 한참 잘 되다가, 잘 팔리는 작가들이 막 백장, 이백장씩 고가로 찍어대면서 무너졌지. 처음에 그 출발은 좋았지만 무너졌어. 그래서 뭐 공방들도 다 없어지고 그런 식이 된거야. 이를테면 ‘내 작품이 좀 벌린다’ 싶으면, 그럴 수록 더 벌려고 하기 때문에… 팔리기 시작하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소수의 성공이 아닌 그런 흐름을 확대시킬 궁리를 해야하는데.

이제 : 작가들이 영혼이 약해요ㅎㅎ.

정덕영 : 작가의 문제도 있고 작가보다도 미술시장의 책임이 크지. 거기서 그러면 어떻게 막을 수가 없어 그렇게 되더라고. 그러나 어쨌든, 그런 시도들을 즐겁게 해봐야지. 이번에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어?

이제 : 네 그럼요. 댁에서 가까운데서 하니 꼭 오세요ㅎㅎ.

정덕영 : 당연히 나는 가겠지만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그렇게 좀ㅎㅎ. 많은 사람들은 아니어도, 주변에 같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꼭 소개해서 같이 가보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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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오늘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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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이제
사진 : 김익현
편집 : 윤율리,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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